광복80년 특별기획 <마지막 증언> 1부 다시 태어나도 광복군 - 오성규, 김영관 애국지사

  • 2025.08.01 15:55
  • 19시간전
  • KBS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다섯 명의 생존 애국지사들에게 있다. 일제 강점기, 격동의 세월 속에 청춘을 다 바쳐 되찾은 조국 그리고 광복(光復). 100세를 넘긴 다섯 명의 애국지사가 전하는 ‘그날’의 역사, 마지막 증언을 전한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애국지사는 단 다섯 분뿐이다.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간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제는 징병·징용, 물자 수탈을 일삼으며 대한민국을 더욱 거세게 짓밟았다. 폭압의 시대, 일제와 맞서 싸웠던 애국지사들은 대부분 지나간 역사책의 한 페이지로 남았지만, 여기 100년의 세월 당신의 삶을 살아있는 역사로 증언하는 이들이 있다.

적게는 열여섯, 많게는 스무 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되찾은 조국 그리고 광복. 그들의 청춘은 80년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생생한 증언 속에서 당신들은 여전히 청춘의 독립투사다. 대한민국이 통일되는 그 날까지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는 다섯 분의 애국지사가 전하는 마지막 증언, 그날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570여 명의 한국광복군 중 이제 남은 애국지사는 103세 오성규 지사와 102세 김영관 지사 단 두 명이다. 열여섯의 오성규, 스무 살의 김영관, 그들은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목숨을 걸고 향했다. 중학교 4학년생(당시 5년 졸업제) 오성규는 만주 펑톈(현재 선양시)의 선양중학교에 다니다 비밀결사 조직이 발각되자 광복군 제3지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푸양의 안후이성까지 20여 일을 걸어 광복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광복군, 김영관 지사는 1944년 경성사범학교 재학 중 일본군으로 징집되자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하여 저장성에서 상라오(上饶)까지, 3개월 고난의 행군 끝에 광복군 제1지대에 입성했다.

1940년 9월 17일 창설되어 1946년 5월 16일 해체되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일제와 맞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어떻게 싸웠을까? 마지막 남은 광복군 오성규, 김영관 지사가 전하는 그 시대 그날의 증언, 그리고 광복 80년을 맞은 후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1945년 3월, 미국 전략 첩보국(OSS)과 한국광복군이 협약한 국내 침투 작전에 오성규는 통신병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비밀작전은 일본의 패망으로 무산되고 만다.

광복, 그날에 대한 오성규 지사의 소감은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맹세했던 광복군의 소회이기도 하다. 1945년 해방되던 해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의 정규군이었지만 국내외 복잡한 정세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개인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 이념 갈등이 심했던 해방정국, 일본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잠시 일본으로 건너간 오성규 지사는 그곳에서 광복군임을 숨기고 주태석이라는 가명으로 평생을 살았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가족들에게조차 밝힐 수 없었던 자신의 독립운동사, 오성규 지사는 1990년 애족장을 서훈하며 비로소 당신의 과거를 가족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2023년, 오성규 (당시 101세/ 현재 103세) 지사는 일본에서의 고단하고 길었던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죽을 자리, 내 조국을 찾아온 것이다“라고 영주 귀국 소감을 밝힌 오 지사는 제일 먼저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지사와 오광심 지사의 묘를 찾아 헌화했다. 방송에선 처음 공개되는 광복군 제3지대 대원들의 사진첩, 당신도 잊고 있었던 앳된 소년 오성규 대원은 어떤 모습일까? 독립운동가였지만 신분을 숨기고 살았던 재일 교포 1세대이자 광복군, 오성규 지사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 다시 태어나도 나는 광복군입니다. – 김영관 지사(102세)

김영관(102세) 지사는 일본군으로 징집된 지 두 달 만인 1944년 12월 3일, 일본 부대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입대했다. 김영관 지사는 ”소대장과 대여섯 명의 광복군이 태극기를 들고 데리러 왔어요. 애국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날 태극기를 처음 봤거든“이라고 그날의 감격을 밝힌다.

중국 저장성에서 출발해 광복군이 주둔 중이었던 상라오(上饶) 시까지 장장 3개월간의 고된 여정이었다. 행여 뒤라도 밟히면 즉시 처형당할 수도 있던 상황, 발이 부르트고 굶주림에 지쳐가도 멈추지 않고 걷고 또 달렸단다. 해방 후 중국 땅에서 부산행 배를 타고 입국했던 김영관 지사는 부두에 도착했을 때 감격에 겨워 땅에 입맞춤을 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국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김영관 지사, 당신의 청춘은 곧 조국이었다. 100세를 넘기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줄곧 거절해 왔던 김영관 지사를 어렵게 만나 광복 80년,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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