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강산을 품은 아빠의 바다
- 2025.09.05 13:35
- 18시간전
- KBS

20년 가까이 배를 타며, 바다를 터전 삼아 지내온 아빠 재석 씨(55). 지난 몇 년 동안 아빠의 삶은 거센 풍랑을 만난 배와도 같았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까지 품에 안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던 아빠. 하지만 아내가 간경화 진단을 받게 되면서,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내의 간병과 육아로 일을 그만둬야 했던 아빠. 하지만 아내는 결국 3년가량의 투병 끝에 어린 두 아들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아빠. 선원 생활을 하며 모아두었던 돈은 간병과 생활비로 바닥난 지 오래였지만 아빠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던 첫째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둘째까지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의탁할 곳이라곤 어머니뿐이었다는 아빠. 연로하신 어머니가 양육에 도움을 주실 순 없었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의지가 되어 주셨단다. 하지만 올해 봄, 어머니마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가족들 곁을 떠나시면서 또다시 무너져 내렸던 아빠. 아내와 어머니를 모두 떠나보내고, 아빠 재석 씨에게 남은 건 첫째 강이(13)와 둘째 산이(10)뿐. 주저앉았던 아빠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역시 두 아들이었다.
충청남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 아빠는 몇 달 전부터 다시 배를 타기 시작했다. 아빠의 사정을 배려해 준 사장님 덕분이다. 그동안은 장애가 있는 둘째의 등하교와 돌봄으로 인해 시간 맞는 일을 찾기가 힘들었던 아빠.
보통 배를 타게 되면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가 돼서야 돌아오거나, 이른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일정. 아이들을 두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라도 해보려 일용직에 대리운전, 노인 일자리까지 신청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는 아빠. 이런 아빠의 사정을 알게 된 사장님이 한 번씩 맞는 시간에 일을 불러주게 됐다고.
주말이면 새벽에 나가 꽃게도 잡고, 낮에는 양식장 관리도 하면서 시간제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매번 있는 일도 아니기에 형편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둘째 산이. 더 나아지기 위해선 보다 많은 치료들이 필요한데, 하루 5만 원가량의 일당으론 생활도 빠듯한 형편. 아픈 아들을 돌보며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아빠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고생하는 아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첫째 강이. 아빠가 일을 나간 사이 동생을 어르고, 달래며 엄마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친구도 되어주면서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단다.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던 것도, 강이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고, 차도에서도, 집에서도 어디로 뛰쳐나갈지 몰라 항상 누군가 옆에 있어야 되는 산이. 처음엔 강이도 동생을 돌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싫다고 울고, 소리 지르며 짜증 부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제는 줄다리기하듯 어르고 달래가며 밥도 먹이고, 글자도 알려주면서 동생 돌보는 것도 익숙해졌단다. 일찍이 엄마가 돌아가셔서 사실 엄마의 정이 기억나진 않지만, 매번 엄마처럼 동생을 챙기는 강이.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강이는 사진으로 엄마를 그렸다.
행여 아빠가 속상해할까 그동안 엄마에 대한 얘기 한 번 없이 그리움을 꾹꾹 눌러 온 강이. 엄마와 할머니가 떠나고, 힘들어하던 아빠에게 그저 힘이 되어주고 싶단다.
*이후 514회 ‘예진이 꽃이 피었습니다’ (2025년 7월 12일 방송) 후기가 방송됩니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