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살아 있구나!” 백 년 시장의 맛

  • 2025.12.03 16:58
  • 3시간전
  • KBS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공간인 ‘전통시장’에는 몇백 년 전, 물건을 사고팔았던 단순한 의미부터 삶의 이야기와 추억이 쌓인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음식, 사람, 세대 모든 것을 채워줬던 곳 백 년 시장, 그 오랜 세월의 맛을 만나러 간다.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400년의 세월을 품은 시장이 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운 통영의 향이 밴 시장으로 음식마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했던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줬던 빼떼기죽, 1990년대 후반부터 통영을 호황기로 이끌어줬던 활어 골목과 시장의 명물로 자리를 잡은 젓갈 골목까지 통영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통영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여겨지는 식재료는 따로 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류 덕에 전국 굴 생산량의 70% 이상을 자랑하는 ‘통영 굴’이다. 통영 사람들에게 굴은 밥상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굴 요리 하나에도 지역 사람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바다의 깊은 맛이 나는 굴. 그 특유의 향을 지키기 위해 바닷물과 민물에 헹궈 만든 굴무침, 추운 겨울에 나는 굴로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통영식 굴국, 겨울바람을 맞아 탱글한 살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각굴 그리고 굴의 비린 맛만 쏙 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굴강정까지. 통영의 색깔이 짙게 밴 통영중앙시장에 평생을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장사꾼들이 모여든 순천의 웃장과 아랫장, 두 장터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전라좌도 순천부에는 두 개의 장이 섰는데 성안 웃장에는 양반들이, 성밖의 아랫장에는 서민들이 드나들었다.

같은 순천의 장이지만 웃장과 아랫장은 파는 품목도 먹거리도 다르다. 양반들은 주로 웃장에서 고깃국을 사 먹었는데, 하나둘 모인 국밥집들이 오늘날의 ‘국밥 거리’를 만들어 냈다.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생겨난 음식이기에 인심도 후하다. 콩나물과 부추를 넣고 깔끔하게 끓여낸 돼지머리국밥에 순대와 살코기, 비계가 섞인 수육은 서비스다. 세월이 지나도 시장의 온기는 여전하다.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 중 최대 규모인 ‘아랫장’이 서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장사꾼들로 장터가 꽉 차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동이 트기 전부터 물건을 이고 지고 나오는 상인들은 대다수가 아침을 거르고 나온다. 그들을 위해 2대째 팥죽을 끓이는 김미선(71세) 사장님과 시장을 떠도는 장돌뱅이에서 지금은 아랫장을 대표하는 전집을 운영 중인 김정주(81세) 사장님은 가난했던 시절부터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다.

전집의 주재료인 명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알차게 요리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명태대가리전, 고소한 맛이 일품인 명태껍질전, 명태 갈빗대를 통으로 뜯어 먹는 갈빗살전 그리고 시장의 인심으로 끓이는 명태내장탕까지. 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지는 순천시장의 맛을 만나러 간다.

경상남도 서부지역의 상업 중심지인 진주에는 1800년대부터 보부상들이 몰려들었다. 보부상 조직이었던 진주상무사가 주체가 되어 개설한 진주중앙시장의 상인들은 현재 대부분 대를 이으며 시장을 지키고 있다. 그렇기에 손님과 상인들의 관계가 끈끈하다.

진주중앙시장의 음식에는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배어있다. 3대째 이어오며 시장 한편을 지키고 있는 육회비빔밥집은 90년째 1대 사장님인 할머니의 조리법을 고수하고 있다. 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손님이 없도록 가게에서 잠을 청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이어받은 조찬효 (41세) 사장님은 어르신들의 소화를 돕기 위해 정성껏 나물을 치댄다.

대를 잇는 맛은 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70년째 이어지고 있는 한 아귀집.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으로 비린 맛을 잡고, 생물 아귀의 살과 고소한 간을 함께 삶아 진주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귀수육을 내놓는다.

시장 곳곳에서 옛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의 배를 채운 음식은 따로 있다. 50년이 넘은 국숫집에서는 멸치, 대파, 새우를 넣고 푹 우려낸 육수에 만 가락국수를 판다. 국숫집의 정경희 (64세) 사장님은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상인들을 위해 직접 쟁반을 머리에 이고 3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배달을 하고 있다. 힘들었던 시절 서로에 기대어 살아온 시장 사람들. 사람 사는 냄새가 그윽한 진주중앙시장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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