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봄꽃처럼 찬란하다 – 서울 화곡동, 방화동
- 2025.04.25 17:28
- 2주전
- KBS
강서구에서 가장 높다는 개화산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동네를 품은 산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도 감탄하여 붓을 들었다는 이 풍경. 수백 년 세월이 지나다 보니 정선이 보았던 모습과는 달라졌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진정성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317번째 여정에서는 강서구 화곡동, 방화동을 찾아 힘들지만 서로 삶을 기대고 살아가는, 봄꽃처럼 찬란한 인생들을 만나본다.
봄이 되면 김지윤 씨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꽃 사진을 찍는다. 꼼꼼히 꽃을 살펴보고 스케치까지 하는 이유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공방에 돌아오면 지윤 씨는 색색 찹쌀 반죽을 틀로 찍고 가는 봉으로 하나하나 잎을 만들어 봄꽃을 그대로 재현한다. 36년간 횟집을 운영했던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다니며 봄이면 꽃, 가을이면 단풍을 모아, 회 접시에 함께 올렸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선물할 때의 기쁨. 지윤 씨가 아버지에게 받은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특별한 화과자를 만들었다는 지윤 씨. 그녀가 선물할 올해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방화근린공원의 산책길은 강서에서 유명한 벚꽃 명소다. 꽃구경하며 걷다 짚공예 할아버지 삼총사의 초가집을 발견했다. 서울에서 웬 볏짚일까 싶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강서구는 쌀로 유명한 농촌 마을이었단다. 그래서 어릴 적에 볏짚깨나 꼬아봤다는 할아버지들. 그 추억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20년 전부터 직접 지은 초가집에서 매일 같이 새끼줄을 꼬고 있단다. 오랜만에 동네지기도 새끼줄 하나 꼬아보며 추억을 되살려본다.
화곡본동시장 근처 골목을 걷다 보면 구수한 냄새가 절로 발길을 끈다. 활활 타는 장작불에 노릇하게 익어가는 통닭구이가 그 주인공. 사장인 정병수 씨는 30년째 화곡동 골목을 지키고 있다. 단골손님과 끈끈한 유대감과 신뢰를 유지하자면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한 법.
결국 1년 365일 쉴 틈이 없었던 병수 씨는 대상포진으로 고막이 손상돼 한쪽 청력을 잃고 나머지 한쪽마저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매일 같이 가게에 나온다는 병수 씨.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딸 정혜인 씨가 가게에 나와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다. 부녀의 애틋한 사랑으로 오늘도 화곡동 장작구이 통닭집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행복한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바람을 이루어주는 공방이 화곡동에 있다. 바로 윤희숙 씨의 말린 꽃 공방이다. 선물 받은 꽃을 가져오면 희숙 씨의 손에선 마법이 일어난다. 손질하고 3개월간 정성스레 꽃을 말려 꺼내면 감쪽같이 처음 받았던 때와 똑같은 모습이 된다.
말린 꽃으로 액자, 향초, 보석함 등 예쁜 작품을 만든다. 희숙 씨를 찾아오는 모든 꽃다발엔 행복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남편의 생애 첫 꽃 선물, 프러포즈, 결혼식, 부모님 은퇴... 그 행복한 순간으로 꾸며진 기억의 정원을 방문해 본다.
개항한 지 67년째인 김포국제공항. 공항 입구인 방화동엔 공항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 명소가 하나 있다. 바로 3대째 내려온 진가기 씨의 중국집이다. 허허벌판에서 오늘의 명소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물려준 동파육 덕분이었다는데. 아버지는 사장이자 조리사인 가기 씨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메뉴판에서 동파육은 빼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과연 그 동파육 속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강서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남부골목시장에 입소문 난 기름집이 있다. 고소한 기름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건 MZ세대 사장 신수빈 씨가 가게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오래된 기름집에 30살 사장이 버티고 있으니 미덥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기름 짜는 기계든 고추 빻는 기계든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 믿음이 절로 간다.
봄이 있기에 추운 겨울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인생의 봄날을 만날 수 있었던 서울 화곡동, 방화동의 이야기는 4월 26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편으로 시청자의 안방을 찾아간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