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1980 사북’

  • 2026.04.20 09:45
  • 2시간전
  • MBC
[PD수첩] ‘1980 사북’

해마다 5월이 오면 우리는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과 숭고한 희생, 그리고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하지만 46년 전 바로 오늘 강원도의 한 탄광촌에서 일어난 비극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5.18 민주화운동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끔찍한 사건. “PD수첩”은 민주화운동의 전초전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가 폭력의 현장, 1980년 사북 사건의 진실에 주목했다. 과연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광부들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석탄량을 의도적으로 적게 측정해 임금을 가로채는 ‘부비끼’가 만연했고, 사택은 466동의 건물에 2,130여 세대가 모여 살아 마치 ‘닭장’을 연상케 했다. 해마다 2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이 탄광에서 목숨을 잃었음에도, 노조는 사측과 결탁해 침묵을 강요했다.

폭발의 도화선은 1980년 4월 21일, 경찰의 뺑소니 사건이었다. 노조 사무실의 광부들을 채증하던 경찰관이 달아나다가 지프차로 광부를 친 것.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는 한마디는 억눌린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거야 뭐 죽기 살기로 합시다. 그럼 우리도 이제는 어차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_1980년 당시 동원탄좌 광부 이원갑

흥분한 광부들은 사북지서와 광업소를 점거했고, 탄광촌은 순식간에 경찰과 광부들이 대치하는 전쟁터로 변했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난동’으로 규정하고, 11공수여단을 포함한 1,220여 명의 병력과 가스 살포용 헬기, 총기 700여 정을 동원하여 사북에 진입할 작전을 세웠다. 대규모 유혈사태가 불 보듯 뻔한 상황. 다행히 공수부대가 투입되기 직전, 상여금 인상과 군경의 실력 행사 금지, 관련자 불처벌 등을 약속한 극적인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북의 봄’이 찾아오는 듯했으나, 이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처벌하지 않겠다던 국가의 약속은 비열한 배신으로 돌아왔다. 사북 사건에 자극받은 노동쟁의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강력 진압을 지시했다. 전두환의 지시로 꾸려진 ‘사북 합동수사단’은 사북 주민들과 광부 140여 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해 정선경찰서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가해진 건 고춧가루 물고문과 매질,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가혹행위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고문들이었다. “PD수첩”이 확보한 당시 “신원파악상황보고”에는 ‘고첩’, ‘불순분자’와 같은 단어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한 평범한 광부들의 투쟁을 고정간첩이나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려 했던 정황이다.

사건 발생 28년 만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사북 사건의 책임이 부당한 공권력을 휘두른 국가에 있다고 결론 내리며, 피해 광부와 그 가족들에게 국가가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다시 1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1980년 사북의 광부들은 과연 언제쯤 국가로부터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번 특집은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스트 박봉남 감독과 “PD수첩”의 특별한 협업으로 완성됐다. 박 감독은 진실을 복원하기 위해 지난 6년간 현장에 상주하며 100여 명의 관계자를 기록해 왔다. 그 결과물인 영화 “1980 사북”은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개봉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람 후 ‘가슴이 먹먹하다. 사북 노동 항쟁이야말로 우리 노동 운동의 효시’라는 평을 남겨 큰 화제가 되었다. 6년간의 끈질긴 기록과 “PD수첩”의 날카로운 시선이 만나 공개되는 1980년 사북의 진실,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할 때다.

“PD수첩” ‘1980 사북’은 4월 21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 출처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