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화려한 바텐더의 삶을 뒤로한 에릭, ‘어부 장부식’이 되다

  • 2024.04.19 17:12
  • 2주전
  • KBS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남자가 있다. 볼락이 유명한 경남 통영에서 3년 차 어부로 살아가는 장부식 씨(44)가 그 주인공이다.

부식 씨는 새벽부터 바다에 조업을 나가고 주말에는 낚싯배에 손님을 모시고 함께 고기를 잡는다. 일하는 틈틈이 찍고 편집한 영상, 귀어와 관련 글 등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다 일을 못 하는 날에는 처남 재철 씨(46)의 카페에 가서 인테리어와 수리할 곳을 봐주고, 동업하는 피시방에서 일한다.

한시도 쉬지 않는 부식 씨는 자기 사람 챙기는 일도 빼먹을 수 없다. 귀어 동기를 만나 카페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즐기고, 전화 한 통이면 지인의 일까지 직접 가서 도와준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부식 씨가 유일하게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부식 씨는 바텐더, 대리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지금도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창 아빠랑 놀기 좋아하는 준원이(11)에게 부족한 아버지인 거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가족들을 뒤로하고 왜 이토록 일에 열정적인지, 오늘도 쉬지 않는 부식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한밤중에 바다에 조업을 나가 볼락과 감성돔을 잡고 새벽엔 낚싯배에 손님을 모시고 낚시 포인트로 안내하는 것이 부식 씨의 주된 일이지만, 쉬는 날이 생기기라도 하면 피시방에 출근해 야간 청소와 음식을 만든다.

그뿐이랴 귀어와 관련한 개인 SNS를 운영하고 지인의 일이라도 두 손 걷어붙이고 도와주는데, 힘든 내색 하나 없다. 못 하는 일 없이 척척 해내는 부식 씨지만 그의 전직은 뜻밖에도 화려한 바텐더였다.

20대 초, 대리기사 일을 하던 중 한 술집의 칵테일 쇼를 보고 현란한 바텐더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바로 일을 배웠다. 다재다능한 탓에 바텐더 ‘에릭’이라는 예명으로 세계 대회 우승도 하고, 아내 윤미 씨(43)도 만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바텐더로 이름을 알리며 결혼생활을 할 줄 알았지만, 통영에 내려와 갑자기 어부가 되었고, 그마저도 정착하는 과정에서 전세 사기를 당해 보증금 9천만 원을 날렸다.

성실하고 화려한 바텐더 ‘에릭’에게 반해 결혼했지만, 지금은 자기 일이 우선인 남편에게 서운함만 늘어가는 윤미 씨. 그런 아내와 아빠랑 뛰어놀고 싶은 아들 준원이를 뒤로한 채 부식 씨가 바쁘게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식 씨의 아버지는 아빠로서, 사회인으로서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삼 남매는 부모님과 떨어져 뿔뿔이 흩어졌고 부식 씨는 5살 때까지 친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매일 다투는 부모님과 집안 형편은 여전했고, 부식 씨는 초등학교 운동회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달리기하는 친구들을 그저 부러워해야만 했다.

삼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참치 공장과 목욕탕에서 하루 종일 일 하며 돈을 벌었다. 목욕탕 주인의 구박에도 가정을 위해 꿋꿋이 일하는 어머니처럼 자신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목표를 잡았다. 각종 아르바이트와 바텐더로 일을 하며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이내 ‘번아웃’이 오며 대인기피증으로 손님들을 상대하기 어려워졌다.

좋아하는 낚시를 하며 잠시 쉬기 위해 내려온 통영에 바를 열게 되었고 투자자 재철 씨의 여동생이었던 윤미 씨와 함께 일하며 결혼하고 아들 준원이도 얻게 됐다. 부식 씨는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에 밤낮이 바뀌어 자주 놀아줄 수 없는 바텐더 ‘에릭’의 삶 대신 어부 ‘장부식’의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살아온 부식 씨는 결혼은커녕 여자에 관심도 없는 독신주의자였다. 하지만 바에서 일하던 윤미 씨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성공해 어느덧 아버지가 되었다. 준원이에게 나의 아버지와는 다른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어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심한 텃세에 배에서 일할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전세 사기까지 당해 모든 걸 포기하려 했지만, 밝고 씩씩한 준원이의 모습에 다시 일어나 쉬지 않고 일했다. 뭐든지 척척 하는 부식 씨가 어려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빠의 역할’이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막막하고 어렵기만 했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재철 씨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아빠 역할 외에 인생의 많은 고민을 주변 사람들 통해 답을 찾으며 자신을 성장시켰다. 어린 시절 아픔을 이겨내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쉴 틈 없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부식 씨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