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ON> 내 고향, 손죽도
- 2025.03.20 15:52
- 18시간전
- KBS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인간의 유전자에도 고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내재되어 있을까? 전남 여수에서 뱃길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섬, 손죽도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여수로, 부산으로, 서울로 떠나 인생을 성실하게 개척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손죽도 선착장에서 사람과 화물의 입도와 출도를 돕는 박성휘, 김혜경 씨 부부도 11년 전 고향의 품에 안겼다. 열세 살에 섬을 떠나 고향을 잊고 살았던 성휘 씨와 서울 토박이 혜경 씨는 이제 등 떠밀어도 도시에 가기 싫을 만큼 손죽도에 푹 빠져 산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크게 하는 동안 몸이 상했던 박기용 씨도 4년 전 고향에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고 욕심 없이 평화롭게 산다. 지방 소멸 위기로 가장 먼저 위기감을 느끼는 곳이 섬마을이지만, 손죽도에는 지난 10년 사이에만 주민이 스무 명 넘게 늘었다. 바다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오, 자네 왔는가’하고 인사를 건네는 섬, 박성휘 씨의 고향 손죽도는 환대의 섬이다.
마을에 하나뿐이던 초등학교, 그래서 손죽도 주민들은 모두가 초등학교 동문이다. 1923년에 개교한 학교는 99주년째 되던 2022년 폐교가 되고 말았지만, 그야말로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친 주민들의 결속력은 고향을 지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손죽초등학교 19회 졸업생으로 여수에서 수중 건축 사업을 크게 했던 이민식 씨는 학교에 100주년 기념탑을, 해안가에 손죽도의 정신적 지주인 이대원 장군의 동상을 사비 들여 세웠고, 고향 경제에 보탬이 되는 새로운 마을 사업을 지금도 구상 중이다.
그런가 하면 20회 졸업생으로 서울에서 큰 사업을 했던 이정록 씨는 주민들 모두가 학창 시절 봄 소풍을 다녀간 추억이 있는 재 너머 작은 마을 땅을 사들여 인적이 끊긴 지금도 지키고 있다. 남은 생이 다할 때까지 더 잘 사는 고향을 만들고 싶다는 손죽도 연어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고향을 지켜준 이웃들에겐 보답이 되고 싶은, 앞으로 고향에 돌아올 이웃들에겐 더 나은 삶의 터전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담긴 노랫말로 가득 채운 담벼락, 그 아래 서서 고향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모습은 벽화를 그린 김용미 작가 자신이다. 손죽도에서 태어났지만, 여수에서 성장하고 살아온 김용미 씨. 꿈에서도 그리워 고향을 찾을 만큼 손죽도에 오고 싶던 소원을 우연히 고향 벽화 그리기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풀었다. 김용미 씨가 태어난 고향집이 지금도 남아있는 손죽도, 그래서 김용미 씨에게 ‘고향은, 부모님’이다.
손죽도의 랜드마크, 삼각산 가는 둘레길에 200m 꽃길을 가꾼 이분조 씨는 20년 전 손죽도에 흘러들어온 이방인이다. 그러나, ‘가고 싶은 섬’을 가꾸는데 일조하기 위해 8년째 꽃길을 가꾸는 이분조 씨에게 ‘고향은, 마음이 뿌리내린 곳’이다.
지켜준 이웃이 있어서 언제든, 누구든 돌아올 수 있는 곳. 고향은 지금도 두 팔을 벌리고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린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