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수몰 83년, 갱구를 열었다'
- 2025.06.17 10:55
- 7시간전
- KBS

일제 강점기, 해저 탄광에서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 136명(일본인 47명)이 한꺼번에 수몰돼 숨졌다. 그로부터 83년. 한일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 시민단체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은폐된 진실을 밝히고 유골 탐사까지 나섰지만, 장비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6월 22일)을 맞아 양국 정부의 관심과 호응을 촉구하고자 한다.
지난 4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長生) 탄광. 한국과 일본 잠수사들이 참여한 첫 유골 공동 조사가 이뤄졌다. 잠수사들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어두운 갱도 안으로 들고 나기를 반복했고, 위태로운 작업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한국 유족들은 오열을 삼켰다.
혈육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까. 은 기대와 우려, 안타까움이 교차한 나흘 간의 탐사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또 잠수사의 측량 기록을 토대로 갱도 형태를 3차원으로 구현하고, 위성항법시스템(GPS)을 활용해 유골 발굴 가능성을 따져봤다.
조세이 탄광은 우베시 내 탄광 중 유독 조선인이 많아 ‘조선 탄광’이라 불렸다. 이유가 있었다. 갱도가 지나는 지층 두께가 법이 정한 47m보다 얕은 30여 m밖에 되지 않아 붕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조선 청년들은 그곳에서 낮은 급여와 살인적 노동, 감시, 감금 등 참혹한 환경과 싸웠다.
결국 1942년 2월 3일 갱도가 무너지는 수몰 사고가 터졌다. 탄광 회사는 2차 피해를 막겠다며 널빤지로 갱도 입구(갱구)를 막아버렸고 작업자들은 산 채로 수장됐다. 진실은 그렇게 80년 넘게 은폐됐다.
역사 속에서 지워진 참사. 그런데 일본 시민단체가 나섰다.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모아 참사의 진실을 밝힌 뒤 1991년 한반도 전역에 퍼져 있는 희생자 본적지에 국제 우편 118통(유족 확인 문서)을 보냈다. 지난해 9월에는 쓰레기 더미에 묻힌 갱구를 기적적으로 찾아냈다. 이제는 희생자 유골을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거리 모금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들의 30여 년 눈물겨운 사투를 재조명했다.
징용자들의 검은 숨을 삼킨 조세이 탄광 사고. 83년이 지나면서 직계 유족의 고령화로 이곳을 찾는 발길도 점차 줄고 있다. 그동안 양국 정부의 공식 조사나 피해 보상은 없었다. 일본 정부는 유골 매몰 위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조사를 외면한다. 한국 정부도 대일 협상에 소극적이다.
6월 22일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시민단체와 유족은 유골 발굴과 반환을 한일 공동 사업으로 진행해 주길 바라고 있다. 차갑고 어두운 바닷물에 잠긴 가난한 조선의 청년들을 다시 '망각의 바다'로 밀어 넣은 채 양국이 어떤 우호와 미래 지향을 말할 수 있을까. 오늘(17일) 밤 10시 KBS 1TV ‘수몰83년, 갱구를 열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