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더디게 흘러간다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
- 2025.08.14 15:40
- 7시간전
- KBS

강원도 동남쪽 끝, 푸른 동해와 웅장한 태백산맥이 어우러진 삼척. 깊은 산자락과 끝없는 바다가 맞닿은 풍경 속에는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역사가 고요히 흐른다. 그 속에는 산에서 계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KBS 332번째 여정은 여름빛 가득한 삼척에서 산과 바다를 일터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를 만난다.
산꼭대기 오지 마을을 걷던 동네 지기.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전통 방식으로 밥을 짓나 봤더니 술을 빚는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삼척시의 전통주 ‘불술’이다.
50대에 접어들고 딸을 시집보내며 열정을 쏟을 무언가가 필요했던 부부. 우연히 일본술이 제사에 쓰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 전통주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날이 바로 불술 빚기의 시작이었다. 화전민의 술로, 술독을 덮은 쌀겨에 불을 붙여 발효시키는 불술만의 특별한 양조법을 전수받기 위해 오랜 시간 전수자를 찾아다닌 것은 물론. 물 맑은 산꼭대기에 집을 지으면서까지 연구를 이어온 부부.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는 명실상부 삼척 불술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술을 빚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부부, 그들의 술에 스민 인생을 음미한다.
산비탈을 따라 펼쳐진 밭과 버드나무 그늘에 놓인 작은 집. 인적 드문 그곳엔 임정숙(44) 씨가 노모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집과 산나물이 자라는 텃밭, 그리고 아는 사람만 찾는 숨겨진 식당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남겨놓은 유산이다. 한때 산골을 벗어나고 싶어 대처에 나갔던 딸은 결국 아버지의 산과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산에서 나물을 캐고 어머니가 만든 청국장으로 산나물밥상을 차려내는 정숙 씨. 아버지의 그리움 가득한 한 상을 맛본다.
속초의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대학로 골목. 이곳에서 공예품을 설치하던 윤혜미(55) 씨가 동네 지기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낙후된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던 작가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폐여관을 리모델링해 예술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다에 버려진 유리 조각과 조개껍데기 등을 주워 새 물건으로 탄생시키기도 하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예술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공작을 하는 이곳에 혜미 씨는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던 딸 예원(27) 씨를 불러들였다. 함께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작지만, 조용히 삼척의 변화를 주도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크고 작고 모양도 제각각인 무수한 돌탑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절과 마주하고 그곳에서 돌과 함께 수행해 온 관봉스님(76세)을 만났다. 오직 돌과 자신만이 있는 산속에서, 누구의 인정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돌을 쌓아 올렸다는 스님. 처음엔 높고 이쁘게 쌓으려 하다 보니 수차례 무너지는 돌탑을 보며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고, 이후에는 평범한 돌을 모아 탑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배웠단다. 30년 넘게 돌과의 인연을 쌓아 올린 그림 같은 불각사에서, 탑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스님의 가르침을 새겨본다.
바다에 닿기까지 오십 번 굽이친다는 삼척의 젖줄, 오십천, 그 절벽 위에 고즈넉이 서 있는 누각이 있다. 바다가 아닌 강을 품고도 관동팔경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다. 절벽 지형을 따라 세운 기둥 위에 우뚝 선 이 건물은 고려 말에 세워져 조선 태종 때 다시 지어졌고, 202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됐다. 누각에 오르면 강물과 하늘, 산과 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숙종 임금을 비롯해 율곡 이이 등 옛 선인들이 시로 남겼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그 시절의 풍류를 이곳에서 다시 마주한다.
투명하리만큼 맑은 바닷물을 자랑하는 장호항에서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김영석(85) 씨와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됐다는 아들 김동범(51) 씨를 만났다. 사업 실패 후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데리고 문어잡이를 나섰던 것이 10년 전. 고되고 힘든 나날이지만 매일 봐도 새로운 일출과 바다 풍경을 보면 힘이 난다. 문어가 잡히지 않아 조급한 날에도 “오늘 못 잡으면 내일 잡으면 된다”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있어 든든하다. 하루도 어김없이 삼척 앞바다에 통발을 내리는 부자(父子)의 항해를 지켜본다.
인생은 시드는 게 아니라 무르익는 것이라고 했던가. 진하게 무르익어가는 목포의 인생 이야기는 8월 16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동네 한 바퀴’ 편에서 공개된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