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지금이 행복하다 – 경기도 안성시

  • 2025.09.11 17:13
  • 10시간전
  • KBS

예로부터 살기 좋고 편안한 땅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곳 ‘안성(安城)’. 안성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336번째 여정을 떠나본다.

온통 논과 밭으로 가득한 안성의 한 외곽 마을. 털털거리며 다가오는 트랙터를 살펴보니 뜻밖에도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27살 젊은 농부 김유미 씨다. 3만 제곱미터가 넘는 옥수수밭을 경작하며 이제는 옥수수 박사가 된 유미 씨가 농사에 발을 디딘 건 3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부터였다.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하지만 유미 씨는 밤잠을 설치며 농업 공부와 현장 체험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아빠보다 더 잘한다는 소릴 들을 만큼 당찬 농부가 됐다. 갖은 노력 끝에 유미 씨가 지켜낸 아버지의 옥수수를 맛본다.

3일에 한 번 쿵덕, 쿵덕 절구 찧는 소리가 들리는 집이 있다. 시어머니 김영희 씨와 며느리인 한상연 씨가 함께 뽀얀 대두와 ‘검은 알’들을 함께 찧어 청국장을 만든다. ‘검은 알’은 다름 아닌 직접 농사지은 쥐눈이콩이다. 남편의 중장비 사업이 망해 시댁이 있는 안성으로 내려온 한상연 씨.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묘지 350개를 관리하고 꽃도 판매하며 밤낮없이 일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시어머니는 같이 장사라도 하자며 며느리에게 청국장을 가르쳤다. 그 와중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바로 쥐눈이콩이다. 1년간 콩을 몇 가마씩 버려가면서 완성한 쥐눈이 청국장은 깔끔하고 씹는 맛이 있어 오는 손님마다 호평이란다. 농사부터 시작해 음식까지 전부 손이 가야 맛있다며 우직하게 장사해 온 상연 씨의 청국장은 어떤 맛일까?

남풍리의 인적 드문 시골 마을. 정적을 깨는 굉음이 들려온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나무를 재단하고 있던 이윤엽 씨다. 고택을 수리 중인가 했더니 자른 나무에 모양을 새기고 물감을 바른 후 종이에 찍어내는 목판화가란다. 공사판 막노동과 인테리어 의뢰를 받으며 전전하다 화가의 꿈을 접고 취미 삼아 시작했던 것이 목판화였다. 한 해, 두 해 쌓여갔던 목판화들을 우연한 기회로 전시했을 때, 윤엽 씨의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 후로 다른 일을 그만두고 조각칼을 든 지 30년. 어렸을 적 보았던 미루나무, 동네에서 보이는 산들, 옆집에서 밭을 매던 아흔의 할머니... 자연과 이웃을 벗 삼아 목판을 새기는 윤엽 씨의 예술혼을 만나본다.

보물을 찾는다고 풀밭을 헤치는 부부가 있다. 소중하게 풀들을 뜯어 바구니를 한가득 채우는 남편 최범 씨와 아내 김도이 씨.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잡초, 아는 사람이 보면 약초라며 웃는 두 사람은 직접 채취한 약초로 육수를 내 해신탕을 만든단다. 원래 이 음식은 남편 범이 씨를 위한 것이었다. 씨름 선수였던 범이 씨가 갑작스레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시술 후에도 쓰러지길 반복했던 남편을 위해 ‘약초 음식’을 고안했다. 그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남편 범이 씨는 건강이 몰라보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용기를 얻은 아내는 남편을 위해 약초뿐 아니라 랍스터, 전복, 소갈비, 닭 등 온갖 보양식들을 더 넣어 90cm 철판을 꽉 채운 해신탕을 완성했다. 아내의 사랑이 가득한 약초 해신탕의 맛은 과연 어떨까?

안성에서 시작해 평택을 지나 서해까지 이어진 강줄기. 한반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라는 안성천이다. 안성 도심 한복판에서도 생태계가 살아있어 강물 따라 이어진 갈대에서 철새들이 뛰어놀고 맑은 물에선 물고기 떼들이 헤엄치는 이곳. 매일 새벽 정영복 씨는 안성천을 찾아 카메라로 유심히 풀숲을 찍는다.

사진의 주인공은 육안으론 보기 힘든 다양한 풀벌레들. 보통 사람들은 징그럽다고 하겠지만 영복 씨는 자신과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단다.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영복 씨.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영복 씨는 입고 싶었던 교복 대신 가운을 입고 이발소 일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그녀가 부딪혀야 했던 건 고된 일이 아닌 여자에게 어떻게 머리를 맡기냐는 편견. 그 편견들 속에서도 꿋꿋이 일할 수 있었던 건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13년 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망함에 시달려야 했던 영복 씨. 그때 만난 것이 사진이었다. 이슬 무게를 견디는 풀벌레, 뜯긴 날개로도 열심히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는 영복 씨. 마침내 이발소를 벗어나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온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다.

흔히 보는 강줄기 하나 그저 만들어진 건 없다. 주어진 환경이 살기 좋고 편안해서 이름 지어진 안성(安城)이 아닌,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 안성(安城)시의 이야기는 9월 13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편으로 시청자의 안방을 찾아간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