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60분> ‘시니어 머니’ 4,300조 시대, 유언장 전쟁

  • 2025.10.02 16:18
  • 2시간전
  • KBS

지난해 고령자 인구가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하면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 60세 이상 고령층의 총 순자산, 일명 ‘시니어 머니’가 약 4,300조 원에 이른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특히 앞으로 20년 동안 베이비 붐 세대가 후기 고령자층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자산이 자식에게 이전되기 시작할 예정이다. 거대한 자산 이전에 앞서,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유언장 작성 비율은 1% 미만에 불과하다. 자기 재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줄 것인지 적는 유언장.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 사람은 “유언장 작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유언장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들의 자산은 자식들에게 온전히 잘 이전될 수 있을까. ‘추적 60분’은 개인의 최후 경제활동인 유언장 작성과 이 유언장을 둘러싸고 남겨진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혼란을 살펴보고 ‘지속 가능한 유언장 문화란 어떤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KBS ‘추적 60분’은 작년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최홍균(가명), 최홍열(가명) 형제를 만났다. 지적장애가 있는 둘째와 그를 평생 돌봐야 하는 첫째를 걱정하던 어머니는 형제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고 사망했다. 그러나 어머니 사망 약 두 달 후에 형제의 아버지가 유류분 소송을 걸어왔다.

고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법정 상속인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상속분인 유류분. 최홍균(가명) 씨는 “어머니의 재산 형성 과정에 아버지가 기여한 바가 없고 오히려 아픈 동생을 돌보지 않고 폭력을 일삼아 가족으로서의 유대가 없어진 지 오래이므로 유류분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홍균(가명) 씨의 친부는 “자신이 아내와 함께 일군 재산이므로 자신에게 유류분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류분 제도는 1977년, 장남 등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고, 재산상속에서 소외되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가족의 형태와 역할이 변하면서 유류분 제도의 원래 취지와 달리 유언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제도에 일부 위헌 및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특히 판결에는 패륜 행위를 한 상속인에 대한 유류분 상실 사유를 규정하고, 기여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라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유류분 제도는 올해 말까지 한차례 개정을 앞두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도입된 신탁 제도. 금융권에서는 유언장 제도가 가진 한계를 보완하고 상속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자산 승계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유언대용신탁’을 공격적으로 영업해 왔다. 덕분에 2020년 약 8,793억 원이던 시중은행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2025년 8월 기준 약 3조 8,894억 원으로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추적 60분’이 만난 장남 구영현 씨는 어느 날 어머니가 모든 재산을 둘째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의 신탁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어머니는 계약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고, 재산을 자녀들에게 공평히 나눌 계획이라는 뜻을 밝혔다. 둘째 아들은 “어머니 동의 아래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계약을 맺었다”는 입장. 이에 다른 두 자녀와 어머니는 신탁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해당 금융사에 문의했으나 “수익자인 둘째 동의가 없으면 신탁 해지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들은 계약 해지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이 소송을 통해 무효가 된 경우도 있다. 5남매 중 막내인 김영주(가명) 씨에 따르면 그녀의 둘째 오빠 김연재(가명) 씨는 당시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설득해 재산의 2/3를 본인에게 증여하는 신탁을 맺었다. 김영주(가명) 씨의 어머니의 후견을 맡은 변호사가 신탁을 체결한 증권사에 신탁 무효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김영주(가명) 씨 어머니의 법적 판단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신탁 계약은 무효라 판시했다.

이번 KBS ‘추적 60분’ 방송에서는 망인이 자필로 쓴 두 가지 유언장을 다룬다. 어떤 유언장은 법적으로 효력을 갖고, 어떤 유언장은 법적으로 효력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강원도에서 식당을 하며 여섯 자매를 키운 어머니는, 뇌졸중을 앓다 지난해 사망했다. 그런데 다섯째인 이수진(가명)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작성한 유언장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유언장에 의하면 망인이 된 어머니의 재산은 넷째 언니에게 단독으로 상속되어야 하는데, 작성 당시 어머니에게 법적 유언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어머니의 유언 당시 담당의 기록을 인용하며,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한편 부산에 사는 한 제보자는 어머니가 남긴 유언장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자식에게 섭섭함을 느꼈던 어머니는, “딸들에게 줄 만큼 주었으니 더는 주지 말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사망했다. 그러나 어머니 사망 후 제보자가 재산을 상속받자, 남은 형제들이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유류분을 청구해 왔고, 1심은 남은 형제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문가들은 “자필 유언장을 작성할 때는 유언장의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하며 작성 당시 법적 유언 능력을 전문가에게 확인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죽음과 돈에 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언장 문화는 과연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유언장 작성 실태와 법적 갈등의 현실을 취재한 ‘추적 60분’ 1428회 ‘시니어 머니 4,300조 시대 유언장 전쟁’은 10월 3일(금) 밤 9시 30분 KBS 1TV를 통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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