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든든한 한 끼를 만나다” 길 위의 24시

  • 2025.10.22 14:49
  • 7시간전
  • KBS

1970~80년대의 대한민국은 눈부신 산업 발전의 시기였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대중교통 이용자가 늘었고, 도로 위가 일터인 기사들은 숨 가쁘게 하루를 달렸다. 종일 밖에서 일해야 하는 탓에 기사의 식사는 늘 집 밖에서 이뤄졌는데. 그래서 그들을 위한 맞춤 식당 역시 이 시기에 활황이었다. 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맛뿐만 아니라 정성과 배려의 서비스를 겸비한 곳. 식사 시간은 길 위의 피로를 풀고 다시 달릴 힘을 보충하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헤아린 식당들은 그들의 허기를 따뜻한 밥으로 달래주고,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었다.

어떤 이는 식당 한편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고, 어떤 이는 주차장에서 세차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식당 주인과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안녕을 바라기도 했다.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길 위의 아버지들을 만나고 그들을 응원하는 넉넉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세계의 문화 수도’, ‘잠들지 않는 도시’로 불리는 미국의 번화한 도시, 뉴욕. 그곳의 한복판에는 현지인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은 한국 식당이 하나 있다. ‘기사 식당’이라는 한글 간판이 반짝이는 곳이 바로 뉴요커들의 도착지다. 식당 안에 들어서면 정겨운 브라운관 TV와 벽걸이 달력, 그리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손님을 반긴다.

이곳의 대표인 윤준우(35세) 씨는 추억 속 한국의 노포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기에 뉴욕에서 식당을 열었다. 어린 시절 한국 기사 식당에서 느꼈던 분주함 속의 정, 그 온기를 표현하는 것이 그의 운영 철학이다.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식당의 메뉴는 ‘제육볶음’을 비롯한 다양한 반찬들이다. 그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머나먼 한국에서 참기름과 간장을 직접 공수해서 깊은 한국 맛의 진수를 선보인다. 낯선 땅 미국에서 세계인들의 눈과 입을 매료시킨 뉴욕 맨해튼의 기사 식당을 만나러 간다.

북악산자락 아래, 성북동에는 50년이 넘게 택시 기사들의 허기를 달래온 식당이 있다. 연탄불 위에서 고기를 구워 숯 향 은은히 밴 ‘불고기 백반’이 기사들을 삼삼오오 모여들게 했는데. 식당의 주인 강부자(81세) 씨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소고기 양념에서 맛의 비결을 얻었다고 말한다.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이용한 것은 기사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먹길 바라는 강부자 씨의 마음이다.

손으로 직접 고기를 다지고 모양을 만들었던 ‘떡갈비 백반’ 역시 이곳의 대표 메뉴다. 청양고추와 사과로 매콤달콤한 맛을 내고 콩가루로 고소한 맛을 더한 것이 맛의 비법이다. 그래서일까? 한번 백반을 맛본 기사들이 동료들에게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면서 식당은 주차장까지도 확장해야 했다고.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주차장은 차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제는 기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름난 성북동의 대표 맛집!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을 소개한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을 지나면 곧바로 보이는 식당 하나. 40년 넘게 화물트럭 기사들에게 쉼터를 내어주는 기사 식당이 있다. 기사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넓은 주차장뿐만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김치찌개의 맛 때문이다. 그리고 박용운(62세) 씨가 직접 농사짓고 서정엽(61세) 씨가 매일 요리하는 정성 덕분이다.

이곳의 메뉴는 오직 돼지고기 김치찌개 백반 하나. 주문이 들어오면 두툼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찌개와 13가지의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비결은 서정엽 씨가 시어머니께 배운 손맛과 마음. 먼 길을 떠나는 기사들이 잠시라도 더 쉬어가길 바라는 마음은 식당 곳곳에 배어있다. 집에 자주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식당 한편을 잠자리로 내주고 간단히 빨래할 수 있도록 빨래판까지 마련해 뒀다. 그 따뜻한 배려의 기억 덕분에 이제는 운전대를 놓은 옛 기사들도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을 내어준 환대의 밥상을 찾아간다.

수인산업도로 대로변에는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기사들의 특식을 책임져온 식당이 있다. 가을이면 살이 꽉 찬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과 통영의 통통한 굴을 매콤하게 볶은 ‘얼큰이영양굴밥’이 이 기사 식당의 차별점이다. 외삼촌의 식당을 이어받은 정경래(56세) 씨는 어머니 한경숙(84세) 씨와 함께 25년째 손님들의 영양 밥상을 차린다. 밤낮없이 운전해야 하는 기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든든한 한 끼와 건강. 정경래 씨는 식사를 통해 손님들이 건강을 챙길 수 있길 바라며 다양한 굴 요리를 준비했다.

추운 겨울에도 찬물에 손을 담가 굴 껍데기를 골라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경래 씨와 한재숙 씨 모자는 서로가 있어 고생이 꼭 밉지는 않았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당은 24시간 문을 열었다. 모두가 잠들 새벽, 운전을 마치고 먹는 ‘굴해장국’은 기사들의 속을 배부르게 채워줬을 뿐 아니라 피로도 녹이는 따뜻한 한 그릇이었다. 기사들의 위로이자 응원이었던 한 상을 들여다본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