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의인들> 이태원·오송·세월호...대형 참사의 한복판, 구조자들의 외면된 트라우마
- 2025.10.22 14:51
- 8시간전
- KBS

그날의 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그들은 참사로 인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참사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순간, 그들은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거리의 의인들’이다. 참사의 순간을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한 증언자이자, 영웅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사고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로 수년간 정신과 약을 먹으며 지금도 힘겹게 살아간다. 사회 곳곳에서 조용히 실천된 이들의 용기와 정의의 순간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 눈에 비친 그날 그곳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사회가 대형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할 때, 한 걸음 물러나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참사의 생존자들이다. KBS 다큐멘터리 은 우리 사회의 대형 참사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을 조명하며, 그들이 본 되풀이 되는 참사와 이후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 고통 등을 다룬다.
이태원에서 패션 잡화점을 운영하던 남인석 씨는 그날 숨을 헐떡이며 가게로 기어서 들어오는 젊은이들과 마주했다. 이미 가게 밖은 층층이 쌓인 젊은이들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곧바로 청년들을 구하러 나섰지만, 고령의 그에겐 역부족이었다. 이후 희생자를 위해 홀로 49재까지 지낸 남인석 씨. 지금도 가게에서 숙식을 하고 있지만,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참사 당일 그 시각 권영준 소방관은 구급차를 타고 버티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출동인 줄 알았던 그가 맞닥뜨린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압사되고 있는 청년들을 끄집어내고 줄기차게 CPR을 해도 점점 희생자만 늘어갔다. 시신을 덮을 천이 부족해 소방차 감염복, 모포 등으로 덮었고, 심지어 다른 희생자의 외투까지 써야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함께 구조를 했던 동료 소방대원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호스로 자신의 몸을 묶고 20여 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 씨. 그러나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트라우마로 생업이었던 화물차는 더 이상 운전할 수 없게 됐고, 매일 밤 괴롭히는 아이들의 비명에 자해도 수없이 했다. 그 때문에 가정도 온전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까. 두 딸은 암에 걸렸다. 그에게 트라우마를 잠시 잊을 방법은 달리기뿐이다.
지금도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문구를 달고 마라톤을 하고 있는 김동수 씨. 2014년 4월 20일 첫 잠수를 시작해 7월 9일까지 세월호 구명 활동을 한 민간 잠수사 황병주 씨. 그날 이후 그는 신장이 급격히 망가져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해야 한다. 지금도 깊은 바다에서 자신의 손에 닿았던 학생의 머리가 잊히지 않고 있다. 수없이 후회는 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바다에 뛰어들 것이라고 하는 황병주 씨. 김동수 씨와 함께 세월호 침몰 당시 사람들을 구조하고 가장 늦게 구명정에 올랐던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 씨는 더 많은 아이를 구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의상자 지정도 거부했다. 그는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술로 버티며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48일간 단식 농성도 했다. 그것이 구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날도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참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오송 지하차도. 화물차 기사인 유병조 씨가 마주한 현장이었다. 그날 그는 손이 찢기는 상황에서도 3명을 구조했다. 그리고 그에게 돌아온 건 불면증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희생자들의 모습뿐이다. 오송 지하차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김석현 씨(가명). 차에 함께 동승했던 친한 형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 형님. 죄책감에 그는 생존자협의회 대표까지 맡으며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2차 가해가 돌아오고 있다. 증평군 공무원인 정영석 씨 역시 출근하던 평범한 하루였다. 지하차도에 갇혀 익사 직전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화물차 기사 유병조 씨. 그렇게 한숨을 돌린 후 그 역시 3명을 구조했다. 그는 여전히 증평군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출근길은 먼 길을 돌아서 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를 지나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도 관련자 처벌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피해자들은 사람이 적게 죽어서 그러냐며 항변하고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 함께 한 표창원 전 국회의원은 “피해자의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참사의 생존자들을 조명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참사에 대비한 제도 매뉴얼과 정책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또한 변상철 인권운동가는 “참사는 국가의 책임이고,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생존자이다. 참사로 인한 이들의 고통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집중 조명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되풀이되는 참사, 되풀이되는 정부의 대처.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 그리고 ‘살았으면 됐지 않았냐’라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생존자들. 참사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그 의롭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자해까지 해야 했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의인들. 이들은 영웅일까? 피해자일까? 아니면 희생자 앞에 죄인일까? 이들이 바라본 참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은 10월 26일 일요일 밤 9시 30분 KBS 1TV에서 방송한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