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그해 겨울 따스한 맛의 기억

  • 2025.01.09 17:06
  • 12시간전
  • KBS

겨울은 어머니의 온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먹을 게 부족하고 궁핍하던 시절, 가난할수록 엄동설한의 추위는 더욱 혹독하고 매서웠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산과 들을 헤쳐 기어이 밥상을 차린 사람이 바로 우리네 어머니였다. 별다른 재료가 없더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뚝딱 만들어 준 음식은 허기를 채우고 추위를 견딜 힘을 불어 넣었다.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으로 엄동설한의 추위도 무섭지 않았던 그해 겨울.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리운 맛의 기억을 함께 나눈다.

고사리나물로 대한민국 식품 명인에 오른 고화순(56세) 씨에게 산나물은 운명이었다. 눈물겹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방 두 칸짜리 작은 흙집에서 7남매와 부모님까지 모두 아홉 식구가 부대끼며 살았다. 천식을 앓던 아버지는 몸이 약해 오래 일하기 힘들었고,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다. 남의 집 밭일도 하고, 산에서 나물을 뜯어다 팔고. 7남매를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화순 씨도 어머니를 도와 산을 오르며 나물을 캐고 겨울엔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를 했다.

7남매가 학교에 다닐 때도, 도시락 한 번 싸주지 못할 정도로 형편은 늘 어려웠다. 자식들 배곯는 게 늘 걱정이었던 어머니는 새벽에 일하러 가기 전 고사리에 무채를 넣고 콩가루를 버무려 국을 끓이셨다. 음식이 잘 쉬지 않는 겨울에는 가마솥에 하나 가득 끓여서 일주일씩 먹곤 했다고. 밤이 긴 겨울, 화순 씨네 7남매는 고사리콩가루국으로 허기를 달랬다. 고소한 국물 맛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았더란다. 그마저도 시간이 안 될 땐 서둘러 호박범벅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일곱 남매의 유일한 군것질거리가 호박범벅이었다.

장이 서는 날엔 당시 값이 쌌던 고등어를 사다가 끓이셨고 그날은 생일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고등어의 살만 발라 고사리와 시래기를 넣고 얼큰한 맛을 내는데, 동네 사람 다 불러 먹이시느라 정작 7남매는 배불리 먹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몰랐다는 화순 씨. 그 시절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난은 혹독했지만 어머니의 음식이 있어 그 시절을 그리움을 추억할 수 있었다. 억척스럽게 7남매를 키워 낸 가슴 따듯한 겨울 밥상 이야기를 들어본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귀농한 정태교(62세) 씨는 3남 1녀 중 막내. 맏이인 큰 누나와는 23세나 차이가 나는 금쪽같은 막둥이다. 재밌게도 큰 누나의 친구 딸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으니, 큰 누나와 장모님은 친구 사이인 셈이다. 경북 예천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큰 누나 손에서 자라게 됐다. 어머니 품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14년, 그래서 태교 씨는 언제나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일찌감치 품을 떠난 막내가 고향에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태교 씨가 좋아하는 전부터 부치셨다. 서울에서 먹는 두툼한 전과 달리 어머니의 전은 밀가루에 소금으로만 부침 옷을 입혀서 얇게 구워내는 것이 특징. 배춧잎의 녹색이 잘 살아나도록 부친 전은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겨울에는 꽁꽁 언 땅에 묻어둔 무를 꺼내서 전을 부쳐도 별미였다. 무전 부치는 날은 꼭 막둥이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보내던 아버지 생각에 더욱 정겨운 맛이 났다.

아흔 넷,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은 메밀묵. 겨울엔 직접 메밀을 갈아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묵을 쑤셨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밥 대신 먹어도 든든했지만, 어머니가 가장 즐겨 드신 건 묵 두루치기라고.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충분히 볶아낸 다음, 김치전골처럼 자작하게 끓여내 메밀묵을 곁들이는 음식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손님들에게 접대한 문어숙회까지. 일찌감치 흩어져 살았지만, 어머니가 해 주셨던 고향의 음식은 가족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힘이었다. 겨울이면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어머니의 음식, 태교 씨의 추억을 함께 나눈다.

첩첩산중 경상북도 문경의 산골짜기에 최근 작은 마을이 하나 생겼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화담(和談)마을’. 1호부터 6호까지, 총 여섯 가구로 이루어진 이 마을은 전국에 흩어져 살던 사촌 형제가 모여 만들어졌다. 문경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사람은 1호 집 주인장인 장명옥(68세) 씨. 문경은 명옥 씨의 외가 동네이자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어머니의 고향으로 시집을 온 것~ 4남 1녀 고명딸로 귀하게 자란 명옥 씨는 결혼할 때까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랐단다.

음식 솜씨가 좋은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쏙 빼닮은 건 결혼하고 나서, 부엌살림을 맡으면서 알게 됐다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들이 어울려 살다 보니, 매일 잔칫집 분위기에 덩달아 명옥 씨가 손맛을 발휘할 기회도 많아졌다. 특히, 문경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인 명옥 씨는 문경 향토 음식에도 가장 익숙하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고향의 음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 그중 명옥 씨가 가장 좋아했던 게 골뱅이국이다. 문경에선 다슬기를 골뱅이라 부르는데, 고사리와 토란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게 어머니의 비법이다.

몸이 허하다 싶을 때 찹쌀로 빚어주신 옹심이미역국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날도 추운데 골 메우자”며 소리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는 명옥 씨. 골을 메우자는 건, 속을 든든하게 채우자는 의미란다. 그래서 어머니는 든든하도록 미역국에 찹쌀로 빚은 옹심이를 넣으셨다고. 명옥 씨가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콩가루시래기찜은 다른 지역에 살던 사촌들에겐 낯선 음식이기도 하다. 시래기에 콩가루를 듬뿍 묻혀서 된장과 함께 끓인다. 겨울이면 어머니 치맛자락에서 나던 고소한 콩가루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선하다. 사촌에서 이웃이 된 남매들이 어머니의 고향에서 추억하는 그 시절의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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