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훗날 신이 된 ‘조선 여인’, 일본 가톨릭 신자들을 구하다

  • 2026.07.10 13:30
  • 1시간전
  • KBS

사백여 년 전, 일본 최고 권력자의 곁에 한 조선 여인이 있었다. 일본은 지금도 그녀를 기억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이름조차 낯설다.

오는 12일 일요일 밤 9시 30분 KBS 1TV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29회 칼과 십자가, 그리고 줄리아 편에서는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여인 '오타 줄리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추적한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조선인 포로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도 조선의 어린 소녀를 데려갔다. 고니시의 영지에서 길러진 소녀는 '줄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새 삶을 얻지만, 양아버지나 다름없던 고니시가 권력 다툼 끝에 처형되면서 운명은 다시 요동쳤다. 그리고 줄리아는 일본 천하를 거머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된다. 당시 일본을 드나들던 서양 선교사들은 편지마다 그녀의 빼어난 용모를 거듭 칭송했고, 쇼군의 궁에 머무는 한 조선 여인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겼다.

2023년,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줄리아가 직접 쓴 편지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거기엔 그녀가 도쿠가와를 가까이서 모셨음을 보여주는 문구와 함께, 일개 포로 신세였던 남동생이 도쿠가와에게 옷과 칼을 받고 무사가 된 사연이 담겨 있었다. 한 여인의 존재감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편지는 조용히 증언한다.

줄리아의 자리는 단순한 시녀의 그것이 아니었다. 서양 신부들이 남긴 편지에는, 도쿠가와의 궁정에서 얻은 가톨릭 박해에 관한 정보를 위험에 처한 신자들에게 알렸다는 기록이 또렷이 남아 있다. 박해가 어디서 닥칠지를 미리 전해, 수많은 이들을 구한 것이다. 한 일본 순교자박물관 관장은 그녀를 두고 “정작 기독교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야말로 기독교의 은인이었습니다”라며 말한다.

가톨릭 박해가 거세지던 때, 줄리아는 ‘누구의 여인도 되지 않겠다’ 선언하며 권력 대신 자신의 신념을 택했다. 한 선교사가 남긴 편지에는, 그녀가 남긴 말이 이렇게 전해진다. ‘왕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며,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하늘의 왕이신 주님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천하를 쥔 도쿠가와조차 그 뜻만은 꺾지 못했고, 결국 그녀는 외딴섬으로 유배된다.

모든 것을 잃고 버려진 섬. 그러나 줄리아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고, 훗날 섬 주민들에게 ‘신’으로 기려졌다. 그녀의 삶은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마저 매료시켜, 소설 ‘유리아라 불리운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에 관해, 오랫동안 알려져 온 이야기와는 다른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일본 권력의 한복판에 섰으나 끝내 일본인이기를 거부했던 여인. 두 나라의 경계 위에서, 그녀가 끝내 택한 것은 무엇이었을지 공개된다. 국적도 권력도 가르지 못한 한 인간의 신념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국적과 운명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존엄을 되묻는 줄리아의 발자취는 오는 12일 일요일 밤 9시 30분 KBS 1TV 에서 만날 수 있다.

  •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