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세계공영방송(PBI) 서울총회 특별기획 <해원 그녀들의 바당> '심방과 해녀', 바다와 함께 살아온 그녀들의 끈끈하고 오래된 이야기

  • 2026.10.12 14:01
  • 2시간전
  • KBS

바다에 들어가기 전, 제주 해녀들은 용왕에게 기도한다. 

숨을 멈추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해녀의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다. 

하루에도 수 백번 생사를 오가는 해녀들은 굿을 통해 신에게 길을 묻는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 바다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평생 바다에서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해녀와 오랜 세월 해녀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도해 온 심방(무속인)이다. 1만 8천 신이 존재한다는 제주, 제주에는 마을마다 수호신을 모신 본향당이 존재한다. 그리고 본향당을 중심으로 무속 신앙이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심방과 해녀는 종교적인 관계를 넘어 제주 바다에서의 생업, 여성 공동체, 지역 문화를 종합적으로 품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 당시 미신타파 운동과 무속 신앙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마을마다 존재했던 당과 심방은 점점 사라져갔다. 또한 해녀들 역시 젊은 세대의 유입이 줄고 고령화되면서 해마다 200여 명이 줄어들고 있다. 공동체의 변화 속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 김녕과 행원마을의 매인 심방으로 45년째 심방의 길을 걷고 있는 서순실 심방과 늦은 나이에 어머니의 자리였던 심방의 길을 이어받은 5년차 송영미 심방, 그리고 당골이라 부르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해녀 삼춘들의 끈끈한 유대를 통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제주 공동체의 오래된 의례와 해원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방송은 세계공영방송 서울총회가 개최되는 10월 14일(수) 밤 10시, KBS 1TV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해원(解冤)은 원통한 마음을 푼다는 의미로 무속 신앙에서 고인의 넋을 달래고, 한을 풀어주는 해원굿의 의미와 상통한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의 고된 삶과 그녀들의 한을 위로하는 제주 무속신앙의 전통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매년 봄 제주 해안마을에서는 바다에서의 무사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잠수굿이 열린다. 물질을 앞두고 자신들이 잡은 해산물로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는 해녀들. 숨을 멈추고 물질을 해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들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심방. 50여 년 함께 마을에서 동고동락했던 당골들을 위해 심방은 신에게 간절히 염원한다. 그녀들의 안녕을 지켜주시라고.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가 고인이 된 한정순 해녀의 동서. 바다에서의 사고는 예측할 수 없다. 사고가 나자 행원마을 해녀들은 두 달간 작업을 멈추고 신에게 기원했다.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남아있는 해녀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잠든 새벽녘 용왕에게 정성을 바친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제주의 바당. 바다밭을 일굴 수 없는 날이면 해녀들은 육지밭으로 향한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제주 여인들의 삶은 하루의 휴식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시간만이 그녀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쉼이다. 현재 제주 해녀의 63%가 70세 이상으로 고령화되면서 해녀들은 매년 200명씩 줄어들고 있다.

심방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열 네 살부터 굿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서순실 심방. 52년간 무속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새마을 운동 당시에는 미신타파 운동으로 정부에서 굿을 막으며 신고자에게 3만원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는 깊은 산 속에서 추위를 이겨내야 했고, 연기와 소리가 밖으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해 굴 속에서 숨어서 굿을 했다고 회고한다.

무속 신앙이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당신이 파괴되는 일도 많았다. 제주 성산읍 수산리의 본향당에는 목이 잘린 당신(堂神)이 좌정하고 있다. 아직도 당신 앞에서 마을굿이 열리기도 하는데... 외지인이 당신의 목을 자르고 나가다 마을 어귓담에서 즉사했다는 소문도 들려 왔다. 혹독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당과 심방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마흔 다섯, 늦은 나이에 무속의 길에 들어선 송영미 심방(49). 심방이었던 어머니의 대를 잇고 있지만 심방 일은 피하고 싶었던 길이었다. 심방의 자녀라고 놀림 받았던 학창시절. 무속 신앙이 사회적으로 박해를 받으면서 겪었던 고초들. 당골들을 위해 굿을 다녔던 어머니는 늘 집에 없었고, 그 빈 자리가 늘 서럽기만 했다. 자녀들에게 그러한 설움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 마트, 버스회사, 식당 등 다양한 일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을 당골들을 위한 자리를 지키고자 다시 무속의 길에 들어섰고, 첫 진혼굿을 준비했다.

송영미 심방의 어머니와 오랜 동료였던 서순실 심방. 영미 심방이 어렸을 적부터 이모와 조카처럼 친하게 지냈지만 그녀가 심방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너무 고되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하지만 신병을 앓았던 조카를 외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영미 심방의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딸을 부탁한다고 남긴 유언이 책임감처럼 남았다. 서 심방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무속에 첫 발을 내딛는 영미 심방의 굿 현장마다 어머니의 그림자처럼 함께 했다. 제자가 두렵고,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길벗이 되어준 이모. 때론 제자처럼, 때론 딸처럼 자신이 걸었던 50년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 무속의 전통을 이어주는 든든한 후배이자 마을 당골들의 정신적 버팀목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며 고된 심방의 길을 걸어가는 송영미 심방, 그런 그녀를 위해 서순실 심방은 소미(굿에서 일을 돕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햄시라, ᄒᆞ여진다(하고 있어라, 할 수 있다)” 제자가 힘들고 갈등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스승의 조언. 미리 앞서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잘 살아내면 신이 그 길을 잘 보살펴주시리라는 믿음이자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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