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트럼펫 대신 산양 택한 손주, 할머니·할아버지와 만드는 ‘사랑의 삼중주’

  • 2026.07.24 14:04
  • 1시간전
  • KBS

강남 갔던 제비가 해마다 찾아오는 평화로운 김제 평야 작은 마을에 별안간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악기 소리의 주인공은 송이준 씨(26)다. 그는 올해 2월, 어릴 적 함께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트럼펫을 전공한 이준 씨는 산양을 제대로 키우겠다며 농장에서 5분 거리의 할머니 집 2층으로 입주했다.

이준 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80여 마리 산양을 돌보며 인터넷으로 산양유를 판매하고 있다. 가끔 이준 씨의 아버지인 송현용 씨(54)가 운영하는 승마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금쪽같던 손주의 입주 덕분에 송기성(84), 김선자(79) 부부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평생 농사를 짓느라 인공 관절 수술까지 한 할머니는 서울에서 공부 잘하던 손주가 시골로 와서 노동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면서도 손주가 밥 한술이라도 더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6첩 반상을 차려 낸다. 더운 날씨에 귀한 손주 몸이 축날까 싶어 할아버지는 수시로 장어를 사 먹이고 손주가 늦는 날이면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전화를 한다.

손주가 들어와서 좋은 것도 많다. 손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단골 이발소에 갈 때면 할아버지 어깨엔 힘이 들어가고, 할머니는 손주가 쟁여놓은 아이스크림을 꺼내먹으며 키운 보람을 느낀다.

마을 회관 앞 깔끔한 양옥 이층집. 앞마당엔 정원, 집 뒤론 텃밭이 딸린 제법 규모 있는 집이지만, 손주가 이사 오기 전까지 2층은 비워두다시피 했었다. 손주가 들어오니 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시로 마당을 쓸고, 향나무 전지 작업을 하고, 텃밭에 들깨 심을 때도 일손을 거들어 주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산양 키우랴, 아버지의 승마장 일 도우랴, 여자 친구랑 데이트하랴 바쁜 이준 씨가 집안 관리까지 신경 쓰는 데에는 가족의 아픈 사연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20여 년 전, 4남매 중 둘째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서울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둘째 아들은 공부도 1등인 데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도 남달랐던 효자였다. 하지만 졸업을 1년 앞둔 겨울 방학, 잠시 고향에 내려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돼서 좋은 집을 지어 주겠다’는 말을 달고 살던 아들. 부부는 아들이 남긴 보험금으로 지금의 2층 양옥집을 지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이준 씨도 틈날 때마다 정원을 가꾸고 집안 곳곳을 관리한다.

고민 끝에 트럼펫을 내려놓고 산양 아빠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이준 씨. 트럼펫을 사랑해 음대에 진학했지만, 직업으로서의 음악은 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길이었다. 그 무렵 산양을 키우던 아버지의 권유로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게 됐다.

문제는 아빠가 “말 키워보는 게 평생 꿈이었다”며 고창으로 건너가 승마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졸지에 산양 목장에 홀로 남게 된 이준 씨는 80여 마리 산양을 혼자 책임지고 있다.

원래 동물을 사랑하는 성격이기에 산양과 함께하는 생활은 즐겁지만, 산양유 생산량과 판매량을 늘리고 관리하는 건 쉽지가 않다. 아버지는 “궁하면 보인다”는 명언(?)만 남기고 산양 목장엔 발길을 끊으셨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아들과 손자 사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손자 편이 된다. 아들이 손자를 혼낼 땐 “너희 아빠도 너 나이 때는 일 못했다”면서 위로를 해주시고, 땡볕에 나와 이준 씨의 콩밭도 함께 살펴 주신다.

한편 이준 씨는 여자 친구와 함께 지역 축제에 참가해 산양유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동네 마트에서 시음회를 여는 등 판로 개척에 힘을 쓰고 있다. 무한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기에 이준 씨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여든의 노부부와 20대 손주가 만들어 가는 사랑의 삼중주를 김제 산양 목장에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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